Ahram Kwon                  Works          Text         Curriculum Vitae



2022


권아람 작가론: 스펙터클의 변주와 미디어 비판 
채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 월간미술 2022.4월호


권아람의 작업을 미디어아트라 칭한다면 그것은 반쪽짜리 분류일 것이다. 작가는 디지털에 치우친 동시대 소통 체계에서 순환하는 이미지와 텍스트를 ‘물질’로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은 1960-70년대 비디오아트와 이후 시각예술 분야가 지속해 온 예술과 기술의 결합에 관한 실험과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이미지의 전지구적 순환을 견인하는 미디어 자체를 중심 주제로 다룬다. 작가는 네트워크화된 미디어의 시스템에 관한 다학제적 이론에 관심을 두고 메타 미디어 작업을 전개한다. 미디어에 관한 사유를 이미지와 소리로 추상화하고, 이것을 변형한 스크린, 즉 아크릴이나 스테인리스 거울과 강철 파이프 또는 와이어를 TV나 LED 패널에 접합시켜 다매체 설치 형식으로 주로 제시한다.

디지털 기반 미술 작품의 의미를 추동하는 미디어와 그것의 지지체가 되는 매체는 미술사학자 데이비드 조슬릿이 지적하듯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조슬릿은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의 선언 “한 매체의 내용은 항상 또 다른 매체다”를 인용하며, 매체와 미디어의 차이는 회화나 조각, 비디오 등의 물질적 특성보다도 그것을 수용하는 이들의 반응을 통해 발현된다고 분석한다.1)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사회에 적용할 때 가장 영향을 받는 것은 그것이 각인된 영역이 아니다. 충격과 각인의 위치는 무관하며, 변화하는 것은 시스템 전체이다. 라디오의 영향은 청각적이고, 사진의 영향은 시각적이다. 각각의 새로운 충격은 모든 감각 사이의 비율을 변화시킨다.”2) 조슬릿은 미디어의 형식이 미디어와 미디어 또는 인간과 기술 사이의 비율(혹은 관계)에 가까우며 일종의 ‘개방회로’로 작동한다고 본다.

조슬릿이 매클루언의 미디어 생태학(media ecology)적 관점을 분석적으로 수용하며 창안한 생태형식주의(eco-formalism) 이론은 정보와 이미지가 그것을 담은 미디어 내부에서의 순환을 초월해 실제 현실에 영향력을 미치는 과정을 생태계 시스템에 빗대어 구조화한다. 그는 미디어가 사회 제도와 체계에 침투하여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정을 피드백, 루프, 알고리즘 개념을 통해 역설한다. 또한, 예술이야말로 폐쇄적인 내부적 소통에서 벗어나 피드백하고, 다변화된 정체성 전략을 통해 현실을 향한 회로를 개방하라고 선언한다. “시스템을 배워서 그것에 맞서라. 노이즈를 일으켜라. 생태형식주의를 실천하라.”3)


생태형식주의와 메타 미디어

권아람은 2020년 웹 기반 작업 <인덱스(INDEXX)>4)를 통해 미디어 생태학 관점 및 생태형식주의를 작업의 색인으로 공개했다. 화면에는 대문자로 표기된 두 단어와 함께, 이종교배를 뜻하는 생태학 용어(Hybridisierung)의 의도된 오기(‘HYBRUDZIERUNG’) 등 총 16개의 열쇳말이 표시되어 있다. 온라인에서 수집한 도판 및 문서 링크와 함께 지금까지의 작업들과 개념적으로 관련된 단서들을 제시하는 것이다. 작가의 다매체 설치 작업이 천착하는 물성과는 또 다른 ‘스핀 오프’ 성격의 비물질 작업이다. 미디어 및 미디어가 기능하는 동시대 사회 시스템과 관련된 작가의 세계관을 조형화하는 데 있어서 미학, 철학, 사회학, 인류학 등 다학제적 담론과의 접점을 표명하고 있다.

열쇳말 중에는 사상가 프레데릭 제임슨의 이름과 그의 저서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자본주의 문화 논리』 관련 링크도 눈에 띈다. 제임슨은 미디어의 속성을 말하면서 “스크린은 납작한 이미지의 표면”이라는 표현을 구사했는데, 권아람의 2채널 영상 설치 작업 <납작한 물질>(2017)은 제목은 물론 내용적 맥락 또한 제임슨의 개념과 상통한다. 이 작업은 작가의 첫 번째 TV 오브제 작업으로, 디지털 스크린과 거울을 결합한 2개의 스크린을 통해 작가가 직접 촬영한 광물 이미지와 함께 온라인에서 찾은 광물 사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거나 변형을 가한 이미지를 각각 번갈아 표시한다. 관객은 실재의 사물을 디지털 이미지로 변환하면서 부피와 질감 등이 소거되고 표면으로 남은 이미지를 보게 될 뿐, 현실과 다른 층위의 ‘물질’이 된 이미지는 각 이미지 간의 차이를 알아보기 쉽지 않다. 물리적 세계가 디지털 세계로 전환되면서 비물질화 될 때 발생하는 현실과 가상의 격차에 관한 관심을 파고들며 작가가 현재의 작업 구조로 이행하는 데 근간이 된 작업이다.


미디어의 ‘물성’

앞서 밝힌 바와 같이 권아람의 작업이 일반적인 미디어아트 작품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스크린의 물성에 대한 천착이다. 독립된 스크린 오브제로서 마치 조각처럼 보였던 <납작한 물질>(2017) 이후에는 전시 현장의 공간감과 깊게 관계하는 형태로도 발전한다. 2018년 원앤제이플러스원 개인전 《납작한 세계》, 2019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기획전 《불안한 사물들》 및 플랫폼-L 기획전 《가능한 최선의 세계》에서 이러한 전략을 지속적으로 선보였다.

작가는 <납작한 세계>(2018) 연작에서 미디어에 나타나는 이미지의 평면성과 허구성을 본격적으로 고발한다. 동명의 개인전이 열린 원앤제이플러스원의 층고가 낮고 좁은 공간적 특성에 맞춰 천장과 벽에 여러 개의 강철 파이프를 수직으로 세우고, 그 위에 여러 쌍의 스크린을 관객의 눈높이에 맞게 고정시켰다. 스크린 한 쌍이 서로를 향해 빛을 비추는 가운데, 각 화면 위의 이미지, 즉 레드와 블루 스크린이 충돌한다. 삼각 또는 사각형으로 절단한 아크릴 거울을 스크린과 접합하면서 화면 속 색면들이 분할된 것이다. 어느 것이 송출된 이미지이고 어느 것이 거울에 비춘 상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상황을 통해 웹 3.0 시대의 온라인 세계, 즉 메타버스에 서식하며 점차 현실 감각을 잃어 가는 우리의 ‘리셋 증후군’을 가시화한다.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선보인 <유령월>(2019)과 <투명한 사물들>(2019)은 공간에서 분리되며 다시 조각에 더욱 가까워져 있다. 강철 구조물을 입은 <유령월>의 모니터는 가정용 TV의 일상성을 벗고 빛이 나는 퍼포머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또 <투명한 사물들>은 기존에 스크린 위에 올렸던 거울을 전시장 바닥에 설치하여 스크린의 중량을 환기하는 동시에 거울에 반전된 상을 전면에 시각화한다. 스크린의 물성과 영상의 환영에 대해 거의 대등한 위계 설정은 온오프라인에서 상품의 물신주의가 극단으로 치닫는 현실을 떠올린다.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메타화하는 과정에서 연출된 조형미는 기술이 아닌 미디어라는 지지체 자체에 대한 사유를 유도하는 장치가 된다. 이는 물론 스크린 자체의 물신성과 상품성을 드러내는 전략이다. 작가는 아래와 같이 덧붙인다.

“매체론의 개념이 작업의 주된 내용이 되면서 거울이나 스크린이 반사하는 특징을 활용하게 됐습니다. 작품 내용과 형식 간의 관계가, 제가 관심 있는 미디어의 이미지 생산 원리나 미디어 기업들이 그 이면에 가지고 있는 목적을 드러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칼처럼 재단이 되어 있고 명확한 컬러로 구성된 작품을 통해, 미디어라는 대상이 사회와 사람들을 은연중에 조작하는 이면의 의미를 개념화할 수 있습니다.”5)


정치성과 오작동

이렇게 그의 작업은 미디어의 정치성에 관한 비판적 시각에 기반한 형태로 구조화된다. 이 점은 2022년 송은미술대상 대상을 수상한 <월스>(2021)에서 더욱 극적인 양상으로 나타난다. 2021년 말 헤르조그앤드뫼롱(Herzog & de Meuron)의 디자인으로 신축된 송은 신사옥 전시장은 총 20명에 달하는 젊은 작가들의 신작을 3개 층에 분산하여 수용했다. 권아람은 지하 1층의 전시장 중앙 부근을 배정받았는데, 그는 공간의 높은 층고를 활용하여 천장에 강철 와이어를 매달고 여기에 4개의 거대한 스크린을 연결하여 마치 화면이 공중에서 떨어져 내리는 듯한 광경을 연출했다. 기존의 TV 모니터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LED 패널을 사용했는데, 요즘 서울 중심부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초대형 전광판에 쓰이는 바로 그 재료다. 정사각 패널 1개를 기본 유닛으로 삼아, 가로와 세로 등의 조합으로 비정형적으로 조합하고, 여기에 아크릴 거울을 이등변 삼각형과 사각형 형태로 잘라 붙였다. 서로 다른 크기, 각도와 비율로 구성된 블루 스크린과 레드스크린은 마우스 클릭 소음과 환풍기 소음 등과 뒤섞여 점멸한다. 이미지와 소리의 리듬이 가속화되며 불길한 인상을 분출하던 블루스크린과 레드스크린은 모든 화면을 빠르게 오가며 커다란 소용돌이를 이루다가, 갑작스레 화면 수신 오류가 난 듯 픽셀화된 화면으로 전환된다. 이내 ‘삐-’하는 소리, ‘지지직’ 소음과 함께 4개 화면은 모든 이미지를 거둬들인다.

“전시장의 강렬한 공간감과 대등하게 조응하면서도 미시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6)는 작가는 특히 스크린의 스케일과 해상도를 향상시키면서도 관객의 감상 시점을 (미디어월 등의 높은 시점과 달리) 일상적인 아이 레벨에서 벗어나지 않게 해 관객이 작품과 신체적으로 근거리에서 교감할 수 있게 했다. 일상적으로 접하는 마우스 클릭 소음, 블루 스크린을 극적으로 반복하고 확산시키는 시청각적 패턴은 조슬릿이 정의했던 미디어의 ‘바이러스’적 특성 또한 나타낸다. 스크린을 경유해 현실 세계로 침투하는 깨진 픽셀의 이미지는 자본주의 사회의 (예비) 소비자를 향한 미디어의 주도면밀한 조준에 대한 비판이자 무효화 전략으로도 읽을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그의 미디어 조각은 더는 관조적 수사에 그치지 않고 정치성을 띈 기호로서 전작의 맥락에서 성큼 나아간다. 미디어에 담긴 인간의 욕망과 그 기대에 부응하는 듯하면서도 결국은 오작동하는 미디어의 오류를 포착하며 디지털 세계의 스펙터클이 허상임을 강조한다.

작가는 스크린을 타고 욕망을 자극하는 미디어를 레디메이드화하며, 오작동으로 상징되는 기기의 기능적 제약에서 오히려 해방의 가능성을 본다. “스크린은 전원이 차단된 순간 벽이 되고, 입자가 켜지는 순간 인간이 욕망을 투영시키는 통로가 됩니다. [……] 매끈한 상품처럼 포장된 이미지 뒤에 자본과 경제의 원리, 생산과 소비의 관계가 있는 것처럼, [미디어의] 오류의 지점들을 몇 가지 단서들로 암시하고 있었습니다.”7) 그는 소통의 명목으로 사용자를 잠식하는, 자본화된 미디어에 대해 이제 막 구체적인 발언을 시작했다. 권아람의 메타 미디어 조각이 폐쇄화된 미디어 경험과 현실을 적극적으로 연결하는 쌍방향의 실천적 양식으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

1)  데이비드 조슬릿, 「개방회로」, 『피드백 노이즈 바이러스』, 안대웅 외 옮김(서울: 현실문화, 2016), 63-64.
2) 위의 책에서 재인용. Marshall Mcluhan, Understanding Media: The Extensions of Man (Cambridge: Mit Press, 1964/1996), 64.
3) 조슬릿, 「선언」, 246.
4) https://indexx.ahramkwon.com.
5) 권아람과 필자의 대화,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오픈소스스튜디오》 연계 프로그램,  2020년 12월 31일. https://www.youtube.com/watch?v=zU8KvJiVIPA.
6) 작가 대면 인터뷰, 2022년 3월 9일.
7) 작가 인터뷰, 『보그 코리아』, 2022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