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hram Kwon                    Works            Text           Curriculum Vitae







2018

말, 시간, 위치 태그의 납작함
추성아 (독립큐레이터) / 퍼블릭아트 2018.8월호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계론적인 미디어 설치 작업의 부흥기가 있었다. 프로그램을 돌리거나 코딩을 해서 만들어지는 기술적인 부분이 돋보이는 작업은 인터렉티브한 성격이 두드러지면서 그 표피에만 머무는 경우가 허다했으며, 과학기술과 미술이 협업하는 한계에 대해 자문해보기 시작했다. 반면에, 어느 지점부터인지 촬영 편집과 영상 콘텐츠에 집중하는 미디어 작업보다 미술이라는 언어를 통해 기술적인 개념 너머에 확장된 기법과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미디어/영상 설치라는 매체에 접근하여 장르를 규정짓는 일이 무의미하게 되었다.

올해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막을 내린 2018 SeMA 소장품전 《잃어버린 세계》에서 권아람의 <말 없는 말(Words without Words)>(2015) 작업을 볼 수 있었다. 블랙아웃 되듯 바닥에 놓인 두 채널의 모니터에는 전면의 백색 화면과 흑백의 대비가 도드라진 돌의 텍스처가 교차되어 깜빡거린다. ‘딱딱딱’ 메트로놈 소리의 박자에 맞춰 화면은 빠르게 바뀐다. 광물의 거친 표면은 굉장히 솔직하고 강렬하다. 표면 텍스처의 이미지와 동등한 호흡으로 나타나는 텍스트 소설 『파우스트』 문장 일부를 발췌하여 번역기에서 발생한 결과값의 오류다. 문구에서 드러나는 데이터의 오류는 어딘지 모르게 시적이기까지 하다. 어구가 맞지 않은 글은 반연극처럼 원인과 결과, 시제가 해체되어 기억의 이미지와 언어가 담고 있는 시간이 조악하고 체계화할 수 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권아람은 돌을 무작위로 채집하듯이 기억의 이미지를 『파우스트』의 “멈춰라 순간이여, 너는 참으로 아릅답구나!”를 떠올리며, 미니멀한 단면의 이미지로 지극히 납작하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작가는 2010년, 영국에서 공부하고 파리와 독일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2016년까지 언어와 시간, 그리고 신체를 이용하여 미디어를 보조하는 도구이자 매체로 상정한 영상, 설치 작업을 은유적으로 선보였다. 2013-2015년의 작업은 ‘언어’라는 소재가 작업의 주축이 되어 종에서 횡적인 도구이자 소통을 매개하는 장치로 바라본다. 이는 그가 유학 생활과 더불어 파리 현지에서 생활하면서 모국어가 아닌 타국어를 통해 겪었던 낯섦과 갑갑함을 바탕으로 완벽한 소통의 불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특히, <언어의 재II(The ashes of words II)>(2013)는 이후의 작업에 비해 조각적인 성격이 강한 먹색 구조물로 언어가 기저에 가진 유동성과 생명력이 소거된 아이러니함을 강조하기 위한 개념비적인 형태로 등장한다.

2015년 이후부터의 작업은 점차 언어가 기능하는 성질이 미디어가 가진 속성과 결합하면서 신춘문예 단편소설과 이성복의 시 등 문학에서의 상징적인 요소를 끌어온다. 권아람은 자신의 의지에서 벗어나 발생하는 분법 구조와 시제 그리고 의미를 모니터 화면에 지속해서 반복하여 보여주므로 영화적인 어법과 영상 예술의 범주에서 벗어나려 한다. 나아가 그는 지금까지 언어를 매개체로 사용해왔지만 레퍼런스의 레이어들이 누적되면서 전달력의 문제 등 언어 작업의 한계점에 봉착한다. 작가는 언어 즉, ‘말’을 물질 그 자체로 사용하여 언어의 틀 안에 갇히는 것을 극복하고자 미디어라는 매체가 갖는 납작함과 형식적 접근으로 방향을 튼다. 예로, 다섯 개의 채널을 바닥에 놉힘으로써 글쓰기의 시점에 맞춰 모니터의 설치 구도를 인간의 신체와 동일시하거나 언어 자체를 보조 매체로 사용하여 주변의 대상들에 집중하게 된다.

권아람에게 말과 시간은 무엇일까? ‘말’은 심리적 혹은 물리적인 기억들을 담고 있지만, 그는 여기에 완벽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지속해서 염두해 두면서, 불완전한 소통에 대해 개인의 주변적인 서사가 지리적 위치에 따라 명명되지 않음을 인지한다. 이는 공간의 개념 너머에 공동체와 국가 등 여러 체계를 구성해온 요소들을 무너뜨리는 미디어에 대한 은유적인 접근과 더불어, 현실과 가상을 오가는 대상에 대한 위치와 이미지를 감각하는데 열중하게 된다. <부유하는 좌표(Drifting Doordinates)>(2016)는 X와 Y 좌표축을 설정하여 모니터 화면의 설치 구조물에 무게 중심을 둠으로써 물리적인 공간에 납작한 표면의 가상 텍스처와 시간의 위치는 태그(tag)하는 행위로 옮겨간다.

나아가 <표면들(Flat Matter)>(2017)은 피부, 광물, 가상 텍스처를 랜덤으로 섞어 언어와 미디어가 작동하는 개념이 사라지고, 모니터와 그 대상은 미디어 물성 그 자체로 인식한다. 작가는 화면 위에 주변 대상을 반사하는 거울 필름과 기하학적인 형태의 색면 필름을 붙여 조형성에 집중하므로 모니터 안에 모니터의 납작한 표면을 극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작업의 변화는 핸드폰 화면 액정에 이미지를 몇 배로 확대해 놓은 것처럼, 일상에 쏟아지는 이미지는 언어를 대체하는 도구로 작동한다. 이처럼, 언어가 표면 위에 드러나지 않고 대신 미디어의 물성이 이미지를 전송하는 개념(feedback loop)으로 변화한 것은 기억과 시간을 더욱 감각적이고 현실적으로 태그한다.

지금, 동시대에 시간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만 그 좌표는 특정한 어디로 향하지 않는다. 타국에서 경험한 권아람의 사적인 고립에서 출발한 언어와 시간에 대한 사유는 문화권 혹은 국가로 확장하여 이야기하는 것보다 우리가 사는 시간과 장소라는 위치에서 시작하여 스스로 조직하는 루프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매 순간 말과 시간 안에서 겪는 단절은 현실과 가상 사이에서 그 물리적 경계 혹은 위계가 뚜렷하지 않고, 자신의 끊임없는 위치 태그를 통해 서로를 모방한다. 그렇기에 작가는 이미지가 끝없이 자기 복제를 거쳐 주고받는 루프 안에서 축적되는 기억의 시간을 더욱 더 압축적으로 납작하게 사유하려 한다. 우리가 있었던, 현재 머무는, 그리고 앞으로 있을 곳과 시간을 넘어 그 이후를 사유한다.